2021년 3월
산책
나는 늘 생각을 덜고 싶었다. 쥐고 있는 것들이 많아 그걸 다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고, 생각을 하는 일이 괴로워서 아무 생각 안 하고 살고 싶었다. 산책을 간다는 것은 아무 생각 하지 않으며 걷는 일이었다. 올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들풀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한다. 눈 열심히 굴리며 걷고 있다.
이미 지나간 것들 중 놓친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. 자연의 아름다움조차 가슴 깊이 느껴 본 적이 없었다. 물 흐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생각이 없어져서 좋았지, 물결을 통해 생각을 하지는 않았으니까. 이제는 생각하기 위해 산책을 나간다. 하루는 길가에 핀 꽃이 꼭 폭죽 같아서 축하할 일이 없는데도 축하받는 기분이었고, 둥둥 떠다니는 오리를 보면서 물 밑으로는 발길질 열심일지, 나처럼 버둥대고 있을지를 궁금해했다. 한강을 바라보기만 하며 앉아 있는 노인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했다. 물 바로 앞에서 소주를 마시던 노인은 다음날에도 같은 자리에 있을지 궁금해했다. 자리에 없기를 바랐다.
책
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쩍 많이 알게되어 덩달아 책 읽는 재미를 알아 버렸다. 이런 것 보면 나는 진짜 주변 사람한테 영향 많이 받는다. 누가 뭐 한다 그러면 걍 아무 고민 없이 나도 시작해 보고 있다.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고. 아무튼, 3월에 읽은 (읽고 있는) 책들은 이렇다.
- 깨끗한 존경
- 붕대 감기
- 아무튼, 비건
-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
- 마이너 코드 러브송
-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
-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
-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
-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
에세이, 소설, 시집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. 한 권을 시작하면 그걸 꼭 끝까지 읽어야만 다음 책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강박을 버리니까 더 다양한 책들을 더 더 많이 읽을 수 있게 되어 좋다.
깨끗한 존경
이 책을 통해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. 질문이 많아졌다. 특히 ‘왜’에 대해 묻는 것이 즐거워졌는데, 시답잖은 대화 속에서 ‘왜’를 물으면 생각보다 사람들은 고차원적인 답변을 내놓기 때문이다. 안드팀 회식 때 울 팀 헬짱 준모 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는데, 여기서 내가 왜? 를 물었다. 내 주위에는 일찍 죽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고. 준모 님은 건강해지는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 즐거워 오래 살고 싶은 부류였(던 것 같)다. 쬐까 취했어서 기억이 가물가물. 아무튼 이런 질문들, 끊이지 않는 생각들이 즐겁다. 살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해서 더 즐거웠다.
아무튼, 비건
깨끗한 존경에 <아무튼, 비건> 작가님의 인터뷰가 나온다. 문장 속에 사람의 무게가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, 김한민 작가님이 그랬다. 비건에 대한 원초적 궁금증도 있었어서 책을 구매했다. 환경 보호에 앞장선다는 것 외에 어떤 이유로 비건이 될까? 잘 모르겠지만 나도 비건이 되면 좋을 것 같다. 그렇지만 더 잘 배우고 잘 알아야 할 것 같다.
대충 이런 마인드로 구매했는데,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너무 작아져서 숨고 싶은 기분이 든다. 비건에 대한 마음가짐은 추후 정리된 마음으로 몇 가지를 더 실천해 본 뒤에 글로 적어 볼 생각이다. 일단은 최대한 붉은 고기를 멀리하고 있고,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풀 비건으로 살고 있는 정도.
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
문학동네시인선 중 꽤 마음에 들어서 구입. 나는 시집의 목차에 특히 눈이 꽂히는데, ‘우리는 시끄럽고 앞뒤가 안 맞지’라는 데에 완전히 꽂혀 버려서 그것 하나로 구입했다. 시집은 꼭 다른 것 다 그저 그래도 뭐 하나에 꽂히면 일단 구매해 두고 싶다. 상황 따라 잘 보이는 시도 다 다를 테니.
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
자조적이고 신묘하다. 사람을 빨아들이는 문장력이다. 생각이 생각을 생각하는 글 같은 느낌? 퇴고 없이 흐르는 생각들을 줄줄줄 적어 놓은 것 같은데, 그 사고의 흐름이 꼭 내가 산책 나가서 하는 생각의 흐름과 닮아서 더 집중해 읽게 된다. (물론 내 생각의 크기는 비교 안 될 만큼 작지만)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중간중간 보여 필사도 하고 있다.
만년필
또 영향을 준 사람들이 있는데, 만년필 덕후들이다. 듣다 보니 작고 외진 마을처럼 만년필에는 하나의 세상이 있었다. 펜을 꼭 펫처럼 잘 길들여야 한다는 것, 제대로 길들이지 않아 펜이 말라 버리는 현상을 베이비 바텀이라는 귀여운 용어로 부른다는 것, 잉크가 번지지 않고 잘 먹는 종이가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, 그 종이 종류 중 하나의 이름은 밀크 포토지라는 예쁜 이름이라는 것, 잉크를 갈 때에는 잘 세척하고 말려 주어야 하는데, 그 과정이 경건해지기도 한다는 것. 작은 마을의 일원이 되고 싶어 만년필을 구매했다. 버터가 뭉개지는 것 같은 필기감이 너무 좋아 쓸 말이 없는데도 끄적끄적 잘도 쓴다. 추천받은 노트 중 다이소 방안 노트를 구매해 쓰고 있는데, 백은선 산문집을 읽은 뒤로 펜 잡고 퇴고 없이 쭉 써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다. 그렇게 큰 종이 두 장을 채우기도 했다. 대충 ‘나는 왜 이럴까?‘에 대한 글들을.
용기내 챌린지
환경 보호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. 첫째는 텀블러 사용하기였고, 둘째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 용기내 챌린지
. 점심 샐러드 포장을 집에서 가져온 용기로 하고 있다. 처음 시도할 때 쭈뼛거리게 된다던 사람들이 많던데 나는 생각보다 별로 수줍거나 부끄러운 마음은 안 들었고, 내 자신이 좀 멋있게 느껴졌다. 변화를 위한 작은 움직임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.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 좋다. 나는 신청하고 있지 않지만, 회사 케이터링도 일회용품이 없어지면 참 좋을 텐데…
글쓰기
패스트 캠퍼스에서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. 일주일에 두 편 정도 브런치에 내 글을 올리고, 작가님께 첨삭받는 강의. 첫 글을 내 이별에 관한 것으로 적어 제출했는데 글의 일화가 더 자세했음 좋겠다는 코멘트를 받았고, 생각이 많아졌다. 사랑에 관한 글은 쓰기 조심스럽겠구나.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에세이로 내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위인인 거지? 분명히 자기 구 땡땡들이 그 글을 보게 될 텐데. 보면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들 텐데. 신경 안 쓰일까?
아무튼, 요즈음 가장 재미있는 것은 글쓰기이다. 재미있으면서도,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. 나는 내 글이 과하거나 느끼하거나 유치하지 않고 솔직해 보였으면 좋겠는데, 그렇게 썼다 생각하고 제출하고 한 이틀 뒤에 다시 읽어 보면 너어무 과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. 쩝. 아무튼간에 제 브런치를 공개합니다. 많관부. https://brunch.co.kr/@chaeniiz
영화
많이 봤는데 이건 또 언제 다 정리한담.
- 싱글맨
- 글루미 선데이
- 빌리엘리어트
- 아비정전
- 시네마 천국
- 조
- 이퀄스
가장 좋았던 건 ‘조’. 진짜 너무너무너무너어무 좋았다. 진짜 지이이이인짜 너어어어어무 좋았다. 빈 깡통처럼 느껴지던 내 마음까지 나라는 사람 자체로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는 그런 영화. 5점 꽝꽝 때려 버렸다.
조에 삽입된 섹후땡의 음악으로 마무리. 삼월 열심히 살았다. 사월에도 애써 생각하며 살아가야지.